Their tails

눈발이 날렸다. 육중한 철제 문 앞에서 민정은 숨을 옅게 내뱉었다. 흰 입김이 찬 온도에 제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내다가 사라졌다. 청주여자교도소. 민정도 올 뻔한 곳이었다. 이모가 버려진 개새끼 같은 처지에 있던 자신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꼼짝없이 콩밥이나 먹었을 테지. 민정은 크고 긴 검은색 골프 우산 손잡이를 미끄러지지 않게 고쳐 잡으면서...

* 교관의 화장실청소 검사는 그리 까탈스럽지 않았다. 솔직히 도원은 뭐 하나 꼬투리라도 잡힐 줄 알았지만 그저 슥 보고 지나치는 게 다였다. 도원은 발아래 거뭇하게 남은 바닥의 얼룩을 제 신발로 밟아 감추기 위해 우두커니 서서 검사를 기다렸었다. 그리고 그만 가보라는 말에 꾸벅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숙소의 방으로 이동했다. 괜히 천천히 갔다가 얼...

부품속으로

고령화 시대로 노인의 인구는 많아지고 출산율은 감소한다. 옛날부터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면서 하던 우려들은 출산을 장려하고 젊은 층들을 보호하고 소중히 여기자고 했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오랜 지난 현재에 그런 우려들이 우습기만 했다. 세계가 노인위주가 되었으니까. 백세시대는 먼 과거얘기가 된지 오래였다. 백세는 짧은 수명이지. 현재는 평균 수명이 이백 살은 ...

죽이거나 살리거나

사정거리, 온도, 바람의 강도와 방향의 거리를 완벽하게 계산. 스나이퍼로서 완벽한 인내심과 동시에 사정없는 성정을 타고나기까지 한 유령이라 불리는 인간. 아니, 살인병기. 어둠 속에서 죽음을 확장시키는 존재. 코드 넘버 136. 그리고 이름, K. 시커먼 눈동자와 어둠으로 물든 것 같은 흑색 머리칼이 바람결에 따라 옅게 움직인다. 유령답게 향수도 뿌리지 ...

좋아해. 그 말을 남기고 J는 거짓말처럼 스륵 잠들었다. K는 한참을 멀리 있을 별을 바라보며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J는 다음날 자신이 한 말을 똑똑히 기억할 테다. 술김에 한 말이겠지만 J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은 술김도, 그냥 장난처럼 해 본 말도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본 J의 모습 중, 처음 본 표정과 말투, 심지...

J는 좋게 말해서 엉뚱했고 나쁘게 말해서는 약간은 나사 빠진 애였다. 미친. 그 소리가 가끔 육성으로 나올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엔 그물망이 없는 배드민턴 채를 통과해보겠다고 몸을 쑤셔 넣기를 시도하다가 겨드랑이 위로 팔과 몸이 껴서 선생님을 동원해 아이들과 구출작전을 펼치게 된 적이 있었고, 돈가스를 하나 더 먹겠다고 점심시간 전에 아프다고 보건실에 ...